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머스 제퍼슨 (문단 편집) === 대통령이 되기 전 === ||[[파일:Thomas_Jefferson_1791.jpg]]|| || 국무장관 시절의 제퍼슨 || 건국 초기의 미국 [[미국 대통령|대통령]]들이 대부분 그렇듯, 제퍼슨도 부유한 농장주 가문 출신 사람이었다. 그러다 성인이 되어서는 [[변호사]]가 되어 여러 [[법]] 문제를 다루게 되었고, 나중에는 [[식민지]] 의회의 의원까지 지내게 된다. 그러나 [[13개 식민지|미국 식민지]]와 [[영국]] [[정부]]는 당시 사이가 좋지 않았고, 이때 제퍼슨은 영국 본토가 식민지에서 벌이는 정책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썼다. 이후 [[미국 독립전쟁]]에서 그는 미국을 지지하였고, 독립선언문 작성에 참여해 인권 등의 문제에 대해서 작성하였다. 이렇듯 제퍼슨은 [[인권]] 문제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억압적인 정책에 반대하였다. > The tree of liberty must be refreshed from time to time with the blood of patriots and tyrants. It is it’s natural manure. > 자유의 나무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. 피는 즉 자유의 선천적인 거름이다. >---- >1787년, [[존 애덤스]]의 사위 윌리엄 스미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.[* 임팩트가 있었는지 해당 문구는 이후 세계 각국에서 인용되었는데, 한국만 해도 [[4.19 혁명]] 직후 [[사상계]]에서 "민주주의의 나무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"는 식으로 부분 재인용되어 쓰였고,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가들의 입에 자주 회자되었던 명언이기도 했다.] 그 후 버지니아 주지사와 [[프랑스]] 공사를 연연하고 국무장관의 자리에 올라 반연방주의(공화주의)의 선두주자가 되었고, [[존 애덤스]], [[알렉산더 해밀턴]] 등의 연방주의자들과 대립각을 세웠다. 이들의 대립이 가장 잘 드러난 사건이 독립전쟁 후 군비 등으로 생긴 채무를 각 주가 균등하게 나눠서 갚느냐, 아니면 각자 알아서 갚는가의 문제. 빚을 덜 진 주의 이익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제퍼슨은 해밀턴의 균등한 분배를 반대하였다. 결국 해밀턴은 [[수도(행정구역)|수도]]를 [[워싱턴 D.C.]]로 이전하자는 합의안을 이끌어 각 주가 빚을 균등하게 갚자고 타협하였다. 1794년에는 국무장관에서 물러났는데, 혁명 프랑스의 미국 공사 에드몽 주네가 (중립 포지션을 취하는) 미국을 비판하며 '혁명의 적 늙다리 워싱턴을 처형해야 한다!' '프랑스가 원하면 얼마든지 미국을 전복시킬 수 있다!' 며 패기롭게 떠들어댄 것이 컸다. 친불파 포지션이었던 제퍼슨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이었을 것이다. (사실 프랑스도 미국 독립전쟁에 20억 리브르 이상을 썼는데, 미국이 미적미적 중립을 취하니 열불이 나는 게 당연했다. 물론 해군 말아먹은 주제에 처형이니 전복이니 외친 주네는 그시대 기준으로도 상당히 정신나간 수준이었다.)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